여행전문가의 베트남 문화탐방 감성 여행기
너무 가벼운 여행서가 싫증났다면,
조금은 의미있는 감성여행을 하고싶다면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읽어보자.
맥부인 후기 :
맥부인도 한때는 세계일주가 꿈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세계를 다 가보진 못했지만 꽤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요. 그런데 해외에서의 생활이 길면 길어질 수록 생각만큼 늘 흥미진진하고 즐겁지많은 않았어요. 여행도 하나의 일상이 되면서 다 귀찮아지고, 진부해지고 그렇더라구요. 이 책을 읽어보니 여행을 계속 해 나가려면 나름의 의미를 찾아, 할건 하고 뺄건 빼고 했어야 했는데 제가 그걸 몰랐던것 같아요.
전문 여행가 답게 그런 매너리즘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극복하고 계속해서 좋은 여행기를 써내는 작가님 인것같아요. 신입처럼 통통 튀거나, 생동감 있지는 않지만 노련한 경력자 답게 적당히 무게감을 주는 균형감각이 돋보이네요.
베트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전쟁에 대해서 다른 여행서적에 비해 많이 다루었어요. 아마도 작가님은 베트남여행에 대한 의미를 전쟁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읽으면서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전쟁이 남겨놓은 것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관광은 일시적이고 설레이지요. 잘 몰라서 흥분되지만 또 그래서 이기적이 되기 쉽습니다. 여행은 좀 더 길고 그래서 현지인의 삶에 많이 닿아 있어요. 그들의 삶을 이해해버렸기 때문에 현지인을 좀 더 배려하는 마음이 들죠. 관광객과 현지인의 중간에서 여행자로서의 작가가 서로를 이해하며 좋은 관계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집니다. 저도 현지에 살면서 참 많이 느끼는 부분이예요.
참고로 제가 하노이에 살면서 느낀 점을 덧대면요.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재밌으면서도 복잡한 나라입니다.
중국의 지배를 천년간 받아서 유교문화가 뿌리깊게 남아있고, 근대에 프랑스 지배를 받아 서구 문화도 남아있어요. 기후가 더워서 동남아인의 느긋한 습성도 있는 반면,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중국인과 한국인 같이 빠릿빠릿하기도 해요. 많은 전쟁을 겪어내고, 공산주의를 지내오며 강한 자존심도 가지고 있고요. 그래서 못사는 나라라고 너무 편하게 대하면 속으로 싫어해요. 특히 연장자에 대한 우대가 강한 문화가 남아있어요.
그냥 베트남 사람 만나면 나이가 많든 적든 시골에 계시는 보수적인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듯 공손하게 대해주면 좋습니다. 겉으로 표현은 잘 안해도 속으로 '한국사람들 괜찮네' 하고 칭찬하고 있을거예요.^^
밑줄그은 문장들:
되풀이되는 여행이 진부한 일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준 것은 사색의 힘과 기록하는 부지런함 이었다. … 여행도 좋지만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노트와 음악 속에서 여행을 회상하는 시간도 나는 매우 좋아한다. 그건 현실도 아니고 꿈도 아닌, 나만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전쟁 기념관 안에는 밀라이 학살 사건에 대한 사진과 기록도 있다. .. 사진과 기록 밑에는 이런 말이 쓰여 이싿. 미군을 욕되게 하기 위해 이 사진을 전시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타락시키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은(미군) 전쟁이 끝난 후 그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된 지금, 정신과 치료를 받는 참전 군인들은 1백50만 명 정도이고, 2만 명은 자살을 했다.
꾸찌 땅굴, 땅을 짓밟는 M-41탱크와 가장 원시적인 땅굴이 만났던 곳, 호미와 망태기를 들고 현대식 무기인 B52와 싸웠던 장소, 애국심이 정복욕을 물리친곳 …
민족주의자건 공산주의자건, 남부 베트남 출신들은 모두 찬밥 신세가 되었다. 통일과 해방을 위해 공을 세운 이들이 이 정도니 정치와 상관없는 일반인들의 불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런 정치적, 경제적 불만 끝에 수십만 명의 남베트남인들이 보트 피플이 되어 조국을 탈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보안대는 탈출자들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고, 해안경비를 맡은 보안대는 보트 피플로부터 돈을 받아 부수입을 챙기는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세상은 얄궂었다. ‘이상’은 권력을 잡기 전까지만 ‘빛’으로 존재할 뿐, 일단 세상의 중심이 되는 순간 현실 속에서 급격하게 타락했다. 그리고 그 이상을 ‘팔아’ 현실에서 권력과 명예와 돈을 챙기기 시작했다.
투쟁 상대가 사라지자 단결은 와해되었고, 이데올로기는 서서히 장식품이 되어갔으며, 현실에서 작동되는 원리는 출신 지역과 자신들의 이익이었다. 그리고 분열과 중오와 편가르기가 온 국민을 좌절 속으로 빠트렸고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 오죽하면 평생을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조차 보트 피플이 되어 조국을 탈출했을까? 탈출은 낭만이 아니다..
전쟁의 추억을 세월의 흐름 속에 흘려보내자, 나는 사이공에서 온갖 비참한 일들을 다 겪어낸 노인의 품에 안긴 듯한 안식의 기분도 느낄 수 있었고, 상처가 아문 뒤 새살이 솟는 풍경을 바라보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타자로서 바라보는 이방인의 여유도 있었고, 한때 악연을 맺었던 나라 사람으로서 안쓰러움도 있었다. 또한 분단의 상처와 내전의 아픔을 같이 겪었던 동병상련 속에서 형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베트남에 오면 우리의 1960-70년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가난, 가족, 희망, 꿈, 정, 밝은 미소, 꿈틀거리는 욕망, 과도한 노동, 관리들의 부패, 바가지 등등. 그래서 베트남에 오면 가끔은 즐거웠고, 가끔은 화가 났으며, 가끔은 눈물겨웠다.
체면, 명분. 이것을 미리 잘 알아서 처리해주면 베트남 사람들은 그만큼 좋아하며 자기들도 또 정을 주고 베푼다. 또한 농담도 잘하고 마음이 열려 있다. 그러나 자신들을 무시하고, 건방지게 굴며, 야박하게 대하면 힘에 눌려 수그리다가도 속에 새겨두고 잊지 않으며 때를 노린다. …
다른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비해 너무 똑똑해서 머리 회전이 빠르고, 쓸데없이 자존심 세고, 엄청난 바가지 씌우고, 갑자기 얼굴색 표변하며 협박해서 돈 뜯어내고… 그러나 그건 베트남 여행의 일부이다. 여행자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다니는 일정한 궤도 속에는 항상 그런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궤도를 벗어나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하고, 여유가 있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짧은 시간안에 많이 보려는 욕심, 조금도 손해 안 보겠다는 욕심, 내가 너희들 술수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내려다보는 태도… 이걸 버리고, 우리의 못살았던 과거를 생각하며 이들에게 조금 손해보고 베푸는 것을 ‘윤활유’라고 생각하느 순간, 여행은 조금이나마 편해진다. 그리고 정 피곤해지면 ‘큰길’을 벗어나 ‘셋길’로 접어들면 된다. 그곳에 상혼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메콩 강.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는 낭만이 흐르는 강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에게는 돈을 벌기위한 땀이 서려 있는 강이다. 여행이란 게 이렇다. 한번 보고 스쳐 지나가면 모든 게 낭만이지만 같은 곳을 다시 오는 순가,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현실이 보이는 순가, 여행지는 더 깊은 정이 들거나, 혹은 피하고 싶은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나는 메콩 강 투어를 앞에 놓고 현재 그 기로에 서 있다.
국경을 넘을 때면 늘 가슴이설레었다. 나라마다 여행의 매력이 있는데 동남아시아에서는 ‘반쯤’을 버리고 ‘반쯤’을 누리는 자유가 있다. 반쯤은 거지처럼, 반쯤은 왕처럼, 반쯤은 고행하고, 반쯤은 본능의 즐거움에 맡기는 자유. 넉넉한 자연과 넉넉한 인심, 싼 물가와 풍요로운 볼거리 속에서 어느 쪽으로 가든 즐겁다.
그러나 적어도 저녁나절, 허우 강의 수상가옥 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마시고, 책을 보는 노인이 부러웠다. 모든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돈 없으면 천대받는 현재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나이 든 이들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다.
해가 지니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어머니는 구수한 밥을 짓고 아이들을 기다리겠지. 그리고 밤이 오면 오손도손 둘러앉아 얘기들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 허우 강변의 모든 생물은 밤과 함께 깊은 안식을 취할 것이다. 행복이란 그런 것 아닌가. 소박한 일상…. 그러나 길을 가며 그것을 바라보는 행복도 있다. 우연히 마주친 이 순간들을 잡을 수 없지만, 그 무상함과 소멸하는 것을 바라보는 허망함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내가 여행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무얼 보고 무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고 옴 그 자체가 나는 즐겁다.
여행길은 항상 좋거나 기쁘지 않다. 오히려 고통스럽고 힘들때가 많으며, 실망하는 순간도 많다. 그러나 그것을 묵묵히 참아가며 길을 가다 보면 생각지 않게 만나는 기쁜 순간들이 있다.
달랏의 모든 호텔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긴 이런 불미스런 일들, 불쾌한 사람들을 만나야 좋은 사람이 더욱 고맙게 느껴지니, 차라리 이런 기억은 여행의 ‘양념’ 정도겠지. 내 전체 여행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꾸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이런 부분적인 일을 확대하고 일반화 하여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로 삼는 순가, 자신ㄴ의 여행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먼지 털듯이 불쾌한 기억을 툭툭 털어버리고다시 길을 나섯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도 많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압력아래서 어쩔수 없이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베트남 파병이나 이라크 파병이나 어떤 정권의 노선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약소국이 갖는 비애라는 것을. 그리고 삶의 가치가 ‘잘 먹고 잘살자’는 데 있으면 결국 비슷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치밀한 자본의 관계 위에 형성된 세상은 신기루, 돈에 의해 굴절되어 하늘에 천국처럼 떠 있는 신기루, 그러나 언젠가 돈이 썰물처럼 사라지면, 신기루는 사라지고 세상은 황량한 사막이 된다. 그때 느끼는 불안감, 허무함… 그런데 유명 관광지에 오면 ‘자본의 관계’는 오히려 일상에서보다 더 집중된다. 오지라는 곳도 그렇다. 조금 알려지면 처음에는 오지였으나 조금 알려지면 이내 여행자들이 몰려오고 금방 온 거리 구석구석과 인간의 영혼 속에 자본의 힘이 침식한다. 그래서 ‘알려진 오지’는 더는 오지가 아니다. 다만 매스컴, 혹은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시선속에서만 ‘오지’일 뿐이다. 현실과 이미지의 갭이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이다.
뭘 할까 망설이다 끄어다이 해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약 4킬로미터의 길이다. 사실 해변이야 숱하게 보아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늘 그렇듯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건과 풍경이 나를 즐겁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학생들과 떠들고 있을 때 구석에 앉은 중년의여인이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하도 강렬하여 섬뜩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학살당한 현장은 물론, 이렇게 밝아 보이는 한 도시안에도 자신들의 경험에 의해서 수많은 감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늘 겸손하고 조심해야 했다.
“난 베트남이 곧 발전할 거라고 믿어요.” “왜요?” “자원이 풍부하고, 사람들이 똑똑하며, 강인하고 부지런한 민족이니까요. 그리고 여기 와서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이 밝다는 거예요.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도 동유럽에 갔을 때사람들이 잘 웃지를 않고 우울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쾌활하고 생기가 넘쳐흘러요.”
그러나 길이나 지도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그런 것에 집착하면 그것 때문에 풍경을 놓치고 사람을 놓친다. 잔 계산에 밝으면 방향을 잃기가 쉬운 법, 나는 방향만 잡은 후 거리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행을 잘한다는 것은 지름길을 찾아서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잘 헤매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했기에 급할 것은 없었다.
언제나 겪는 일이지만 막상 도착한 목표는 별 것 아닌 경우가 많았다. 과정이 즐거웠으니 그걸로 족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사람이건 암담하고 우울한 과거를 딛고 밝고 희망차게 변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그것은 그들의 희망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희망이지 않은가. 진심으로 그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제 너그럽게도 한국 사람들을 환영하고있다. 한국인들이 베트남인들의 너그러운 환대에 우쭐거리지 말고, 늘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그들을 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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